제목 | 가루고개의 색씨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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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민속/전설 |
내용 | 가루고개의 색씨무덤 「여보세요. 저 좀 보고 가세요」 「여보세요. 이쪽으로 오시라니까요」 「도련님, 저예요. 저를 몰라보시겠어요」 청소면(靑所面) (남방재) 남쪽에 있는 가루고개에서 오늘 저녁에는 한 색시가 부르는 애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달전부터 고개를 넘다보면 한 색시의 부르는 소리가 있어 담력이 있는 사내들은 가끔 그 소리따라 숲으로 들어갔지만 목소리 따라 가까이 가다보면 처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숲속에 자리한 묘지(墓地)이고 해서 사람들은 기겁을 해서 도망쳐 나오곤 했다. 하루는 한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고 이 고개를 넘다가 역시 똑같은 색시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질이 약한 선비는 색시의 부름을 받고 멈짓 서선 「감히 대장부가 지나가는데 계집이 한밤중에 부르다니. 요망한 계집 이로다. 대사를 앞두고 길을 재촉하는 나그네에게 감히 소리를 질러. 어느 계집애냐!」 하고 소리를 지르자 「그냥 지나가세요. 인연이 없나봐요. 도련님, 크게 대성하세요.」 하고 우는 소리가 들리므로 신고가던 짚 신 한쪽을 벗어놓고 유유히 지나갔었다. 남방재 아래에 한 농부가 외동딸 하나를 데리고 세식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부지런해서 부유하게 살았고 항시 집안에선 웃음이 끊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딸이 자라서 열입곱이 되었다. 얼굴이 곱고 재산이 있고 옛날 조상에서 큰 벼슬을 해서 때묻지 않는 집안이라 여러 곳에서 혼담이 들어왔었다. 열입곱으로 접어들면서 밤낮 출입을 금한 딸은 어여뻤다. 그래서 마을 총각들은 그 집 딸을 구경해야겠다고 대낮에도 담벽에 숨었다가 그집 머슴들로부터 물벼락을 맞기도 했었다. 혼처는 여러 곳에서 들어왔지만 딱 부러지게 정하지를 못하고 그럭저럭 한해를 보냈다. 딸이 열여덟으로 접어들자 부모들은 이래서는 않되겠다고 혼처를 서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해서 고민 끝에 끝내는 청양(靑陽)에 사 는 박진사(朴進士)댁 도령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선 이른 봄에 혼례(婚禮)를 올리기로 하고 결혼준비를 서둘렀다. 딸은 밤이 이슥하도록 시잡갈 수를 놓기 위해 밤샘을 했다. 목단꽃은 빨갛게 수놓고 호랑이가 목단꽃을 지키는 가리게를 만들고 딸이 「후 유」 하고 한숨을 쉬는데 대문을 바삐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슴이 나가서 문을 열어주자 청양에 사는 중신애비가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고 크게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집안이 왈칵 뒤집 혔다. 중신아비의 말인즉 박진사댁 도령이 어제밤에 음식을 잘못먹고 급사하였다는 것이었다. 고르고 골라서 혼담을 정한 신랑감이 죽었다는 소식에 딸은 어이가 없어서 그냥 방바닥에 쓸어졌다. 그래서 몇일후에야 딸 은 깨어났지만 딸의 상처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딸은 시름시름 눕더니 병석에 눕게 되었다. 딸이 병석에 눕자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갔다. 혼담이 있었으므로 청양 박진사댁 총각귀신이 그녀를 데려 갈려고 병석에서 못일어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딸이 병석에 누워있는데 하루는 역시(亦是) 청양땅에 산다는 한선비가 찾아왔다. 그 선비는 청양 박진사 댁 도령과 친한 사이라는 것과 그 도령이 죽었으니 내가 대신 귀댁 따님과 혼사를 치루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딸이 병환중이니 어찌 혼사를 정할수 있겠느냐고 다음에 딸이 병석에서 일어나면 다시 찾아오라는 말로서 그 선비를 돌려 보냈었다. 그 선비를 돌려보내고 그 이튿날 그의 딸은 병석에서 일어나지를 못하 고 죽었다. 딸은 눈을 감을 때 차마 죽을 수 없다는 말과 이왕이면 제가 죽으면 총각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가로로 묻어 달라고 했다. 죽기가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몇번이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다가 딸은 눈을 감았 다. 딸이 죽자 그녀의 부모들은 딸의 소원대로 딸을 큰 길가에 가로로 묻었다. 딸 하나를 귀엽게 키워서 시집보내는 것이 원이었던 부모들은 허전하기 한이 없었다. 딸이 죽은지 그럭저럭 삼년이 되던 해였다. 딸이 묻힌 고개에선 가끔 혼령이 나온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딸에게 두 번째로 혼 사를 치루고 싶다고 찾아왔던 청양의 선비가 이곳을 지나다가 딸의 혼령의 부름을 받고 호통을 쳤었다. 그후 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청양에 사는 선비가 한 고을의 원님이 되어 낙향(落鄕)하는 길에 이곳 가루고개를 넘어가다가 언뜻 한쪽을 바라보니 짚신이 한짝 참나무에 걸려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년전 자 기가 이곳을 지나다가 처녀혼령의 간청에 벗어 던졌던 짚신 한짝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레에서 내려서 따라오는 몸종들게 제사차비를 시키고선 가로고개에 제사를 지냈다. 마치 자기 아내에게 제사를 지내듯 정성 컷 제사를 지내는 그 선비를 제사가 끝난 다음 짚신 한짝을 무덤옆에 묻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갔지만 그는 그후도 가끔 여기를 들려선 묘앞에서 정성들여 예를 올리고 돌아가고 했다 한다. 혼처가 너무나 많이 나왔고 곱게 자란 농부의 딸이 첫 번째 혼담에 올랐던 진사의 아들이 죽자 그것이 화병이 되어 병석에 누웠고 다음 혼사를 치루고 싶다는 청양 선비의 혼담을 받아 들이지도 못한채 죽어서 그 선비의 귀여움을 받은 한 농부의 딸은 그 선비가 죽자 더욱 슬펐던지 비오는 날이나 우중충한 날이면 밤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슬픈 울음으로 가끔 사람을 홀렸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