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백유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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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역사인물 |
내용 | 예학에 밝으며 절의에 산 백유공 세조(世祖)가 등극하여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있는 백유공(白惟恭)은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로 영전되어 가면서도 가슴이 씁쓸하기만 했다. 벼슬을 버리고 그만 일을 시작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럴수도 없고해서 임지에 당도하기는 했다. 어떻게 세상이 바꾸어지든 지방의 관리들은 항시 그대로였다. 세종(世宗)때 벼슬하던 사람들은 단종(端宗)이 비분의 왕으로 죽었으나 그 까닭에 비통해하는 관리들은 없었다. 그는 부임해서 친면이 있는 유생을 찾아가니 처음부터 그를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유생은 말하기를 세상은 작고 뒤바뀌어도 그사람이 그사람이라고 말하며 조정의 역적무리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따지더니 이젠 나를 잡아가라고 눈에 시기를 하는 것이었다. 세조(世祖)의 등극은 사리에 어긋나는 것임을 잘알고 있는 백유공(白惟恭)은 웃으면서 그 유인을 꼭 붙잡으며 「잡아가려면 술이 취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맨정신으로서야 내가 어떻게 자네를 잡아가겠나!」하고선 술병이 한병두병 들어오다가 그만 독채 들여오라고해서 밤을 세우며 정을 나누었다. 그가 이튿날 집을 나올때도 정담이야기는 한마디도 않했으니 그의 인격은 알아볼만하다. 백유공(白惟恭)은 세종(世宗)을 위대한 왕으로 섬겼기에 항시 왕을 존경하였고 또한 나라에 새로운 물결을 심는 군주로 모셨다. 또한 백성을 사랑하는 정성이 지극하여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신하로 공직에 있음을 항시 자랑하고 싶었다. 본관은 남포(藍浦)이고 호가 정제(靜齊)인 그는 그래서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와 곧잘 어울렸고 진실하게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일하는 것을 보람으로 느꼈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힘을 자랑하며 북방에 국경선을 그은 김종서(金宗瑞)의 기백을 누구보다도 높이 사니 김종서(金宗瑞)또한 그를 극진히 아꼈었다. 그들은 그래서 세종대왕(世宗大王)을 중심으로 튼튼한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어려운 역경을 넘기면서 밤잠도 자지않고 일을 했었다. 일을 하다가도 피곤하면 쉬면서도 인생의 괴탄같은 언사는 한마디도 없었다하니 그들은 얼마나 태평천하에서 살았는가를 알수가 있다. 그런 세월이 머무르지않고 세상이 뒤바뀌는 듯 세종대왕(世宗大王)이 돌아가시면서 단종(端宗)을 임금으로해서 더욱 부강한 나라를 만들라는 유언을 남길 때 그들은 슬픔을 억제하면서 단종(端宗)을 모시고 세종대왕(世宗大王)이 못다이룬 일을 이룩해서 나라를 더욱 튼튼한 나라로 만들 것을 결심 하였으나 단종(端宗)이 어림을 미끼로 세조(世祖)가 충신들을 죽이며 등극할 때 그는 시골 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너무나 세상이 잘못되어 가는 것에 분함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한양(漢陽)에 있는 성삼문(成三問) 및 학자들게 편지를 보내며 나라의 사직은 흔들려도 좋으냐고 물으며 단종(端宗)을 위해서 나라의 기틀을 세울 것을 모의했다. 그러나 그들이 일을 성사하기전에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 타향에서 그들과 금산대군(錦山大君)과 이보흠(李甫欽)과 단종(端宗)복위를 위하여 참가하였다가 한양에서 크게 일이 벌어져서 실패하자 자기가 이 곳에 부임했을 때 찾았던 유생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가 산중에 초막을 짓고 여러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으나 그는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하루는 유생과 심심계곡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데 천하의 방랑인 김시습(金時習)이 찾아왔다. 생육신의 한사람이기도한 김시습(金時習)은 그를보자 손등을 만지며 눈에 눈물을 글썽한다. 「매월당(梅月堂)이 우시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그가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억지로 눈물을 참고 이렇게 말하자 매월당(梅月堂)은「정제(靜齊)가 울지않으니 내가 울어줄 수밖에…」하곤 서로 부둥켜 앉고 불사이군의 정을 나누었다 한다. 사람의 됨됨은 부귀가 있고 없고간에 귀천이 있고 없고간에 사람의 지조가 문제이고 행실이 또한 문제라고 말한다. 「항시 세상이 바뀌어도 바뀌는데로 변하는 인생이라면 어찌 산 사람이라 하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며 산에서 풀을 뜯고 과일을 따먹으며 일생을 마치니 그의 거룩한 지조는 참으로 값진 지조였음을 그후의 인물들이 자주 글로 옮겼으며 그대가 울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고 말로 그 물음에 그대가 울지않으니까 내가울어주는 거다라는 말은 선비들의 입에서 지조를 지키는 선비들이 자기를 위로하는 말로 오래도록 전해왔다 한다. 세종(世宗)때의 충신이며 단종(端宗) 때문에 일생을 산중에서 지내며 단종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지조를 지킨 충신의 한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