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양자 김광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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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역사인물 |
내용 | 동양자 김광제(金光濟)선생 김광제는 1866. 7. 1보령시 웅천읍 평리에서 출생하였다. 초명은 홍제(弘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정3품까지 올랐으나, 국운이 기울어 가고 일제 참략이 본격화되자 과감히 관직(동래경무관)을 버리고 일제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하였다. 일제의 한국 경제 수탈이 가속화하자 김광제는 대구광문사 사장으로 서상돈 등과 함께 국권수호를 위해서는 먼저 일본의 국채 1,300만원을 상환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국채보상 운동을 전개하였다. 김광제는 국채 보상운동을 주도한 중심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국채보상운동 뿐만 아니라 학회활동에 전념하였으며,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교남 교육학회등 학회에 참여하여 주로 민중계몽을 위한 강연활동에 전념하였으며, 1906년 대구 광문사에서 설립한 사립보통학교 교장, 대구부에서 설립한 달명의 숙 부교장 겸 강사로 교육구국운동에도 매진하였다. 1914년 경에는 국내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홍경현 동로홍묘자에 일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하여 민족교육에 전념하기도 하였다. 1920년 재일본 동경유학생들과 함께 2·8독립선언 1주년을 맞이하여 제2의 3·1운동 거사를 계획하여 3월1일 국내에 격문과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노동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운동이 고조되자 김광제는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노동단 단장,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 회장 및 경성본부장으로 노동자 계몽강연과 생활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김광제의 글과 내용을 통해 그의 사상과 국권회복을 위한 이념을 살펴볼 수 있다. 김광제는 탁월한 사상가이며 아울러 국체보상운동, 학회활동, 교육구국운동, 노동운동 등 여러분야에서 다양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